1) 출생과 성장 — 야망으로 가득한 무대의 시작
베티 데이비스(Bette Davis)는 1908년 4월 5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로웰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루스 엘리자베스 데이비스(Ruth Elizabeth Davis)로, 어린 시절부터 뚜렷한 의지와 강한 개성을 가진 아이였다. 그녀의 부모는 일찍 이혼했고, 어머니는 홀로 두 딸을 키우며 베티의 예술적 재능을 키워주었다.
청소년기 베티는 무대연기에 매료되어 뉴욕의 ‘조지 커플랜드 연극학교(John Murray Anderson School of Theatre)’에서 연기를 공부했다. 1929년 브로드웨이 무대에 데뷔하며 천천히 명성을 쌓았고, 1930년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와 계약을 맺으며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그러나 초기에는 평범한 미녀 배우로 취급되었고, 여러 작품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그녀의 진가가 드러난 건 1934년의 『Of Human Bondage』 이후였다.
2) 돌파구 — 『Of Human Bondage』의 파격과 독립 선언
베티 데이비스는 『Of Human Bondage』(인간의 굴레, 1934)에서 매춘부 ‘밀드레드’ 역을 맡아 기존의 여성상과 전혀 다른 인물을 표현했다. 그녀는 화려함을 버리고 거칠고 잔인한 현실을 담은 연기로 평단을 놀라게 했다. 당시 할리우드의 여성 배우는 아름다움을 우선시했지만, 베티는 ‘추한 진실’을 연기함으로써 배우의 본질을 증명했다.
그녀는 “여성은 단지 장식이 아니다”라는 신념을 지녔고, 이를 몸소 실천했다. 1935년 『Dangerous』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비평가와 대중 모두의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워너브라더스는 그녀에게 반복된 ‘멜로드라마 여주인공’ 역할만 맡기려 했다. 이에 반발한 베티는 영국으로 건너가 법정 소송을 벌였다. 이 사건은 할리우드 역사상 최초의 “배우의 계약자유 소송”으로 기록되며, 이후 배우들이 스튜디오 시스템에 맞설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나는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나를 여배우로 만든 것이다.” — 베티 데이비스
3) 전성기 — 강인한 여성 캐릭터의 시대를 열다
1938년 『Jezebel』에서의 연기는 그녀의 전성기를 예고했다. 베티는 남부 귀족의 고집스럽고 도전적인 여인 ‘줄리 마스덴’ 역으로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그 해 그녀는 워너브라더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배우가 되었고, 할리우드 최초의 여성 예술가협회 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1940년대에는 『The Letter』(1940), 『Now, Voyager』(1942), 『The Little Foxes』(1941) 등에서 복잡한 감정의 여성을 연기했다. 특히 『Now, Voyager』에서는 억압적인 가정에서 벗어나 자아를 찾는 여성의 심리를 현실감 있게 표현하며 수많은 여성 관객의 공감을 얻었다.
1950년에는 인생의 대표작 『All About Eve』로 돌아왔다. 연극 무대의 여왕이자 노쇠를 두려워하는 여배우 ‘마고 채닝’ 역은 베티 데이비스의 인생과 겹쳐 보였다. 그녀의 냉소적 대사와 눈빛 연기는 지금도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연기” 중 하나로 꼽힌다.
4) 주요 수상 및 후보 이력
- 1935년 —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Dangerous)
- 1938년 —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Jezebel)
- 1934~1962년 —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10회 후보 지명
- 1950년 —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수상 (All About Eve)
- 1977년 — 미국 영화연구소(AFI) 평생공로상 수상
- 1989년 — 케네디 센터 공로상 수상
그녀는 경쟁 부문 오스카를 두 차례 수상했으며, 당시 여성 배우로서는 전례 없는 10회 노미네이션 기록을 세웠다. 또한 그녀는 헐리우드 여성 배우 최초로 미국 배우조합(SAG)에서 ‘여성 독립성 상징상’을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5) 연기 스타일과 예술적 철학
베티 데이비스의 연기는 ‘감정의 진실성’에 근거한다. 그녀는 스스로를 “감정을 흉내 내지 않는 배우”라 정의했고, 완벽한 감정 몰입으로 장면을 압도했다. 작은 표정 변화로 인물의 심리를 전달하는 능력은 독보적이었다.
“나는 아름답지 않았다. 하지만 관객은 나를 잊지 못했다.” — 베티 데이비스
그녀는 미모보다 개성과 카리스마를 무기로 삼았다. 또한 시대를 초월해 ‘여성의 주체성’을 표현한 배우로, 1930~50년대 여성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다. 후대의 글렌 클로즈, 메릴 스트립, 수잔 서랜던 등 수많은 배우들이 그녀를 연기의 교본으로 꼽는다.
6) 말년과 유산
1960~70년대에는 『Whatever Happened to Baby Jane?』(1962)으로 새 전성기를 맞았다. 조앤 크로포드와 함께 출연한 이 영화에서, 그녀는 한때 스타였으나 현실에 매몰된 여배우의 광기를 놀라운 사실감으로 표현했다. 이는 호러 스릴러 장르에서 여성 배우의 존재감을 새롭게 정의한 작품이었다.
베티 데이비스는 1980년대에도 The Whales of August(1987) 같은 작품에서 여전히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1989년 10월 6일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까지 그녀는 “연기만이 내 인생의 이유였다”라고 말했다.
7) 총평 — ‘연기의 여왕’으로 남은 영원한 아이콘
베티 데이비스는 헐리우드 역사상 가장 강인하고 독립적인 배우였다. 그녀는 미모보다 진정성, 인기보다 연기력으로 자신을 증명했다. 50년 넘는 연기 경력 동안 100편 이상의 작품에 출연하며, 여성이 주체적으로 서사를 이끌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시대의 한계 안에서 싸웠고, 결국 그 한계를 부쉈다. 베티 데이비스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할리우드 여성 배우들은 지금처럼 자유롭게 자기 캐릭터를 선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연기라는 예술을 통해 “여성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시대”를 앞당긴 인물이었다.
“나는 타협하지 않았다. 그것이 내 성공의 비밀이자, 내 고독의 이유였다.” — 베티 데이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