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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keem Olajuwon, NBA 정점에 오른 나이지리아 출신 센터

by alphapl 2025. 8. 17.

 

 

 

 

 

 

 

하킴 올라주원
하킴 올라주원

 

 

 

 

하킴 올라주원(Hakeem Olajuwon)은 NBA 역사에서 가장 완벽한 센터 중 한 명으로,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전설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미국 대학 농구를 거쳐 프로 무대에 입성한 그는, 정교한 풋워크와 ‘드림 셰이크(Dream Shake)’로 불리는 독창적인 기술로 팬과 전문가들을 매료시켰다.

이번 글에서는 그의 성장 배경, 소속팀 경력, 주요 기록과 업적, 그리고 전체적인 평가를 살펴본다.

 

 

성장과정 – 나이지리아에서 미국 무대로

 

하킴 올라주원은 1963년 1월 21일,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축구와 핸드볼을 즐겼고, 농구를 시작한 것은 15세 무렵이었다.

당시 키가 급격히 자라면서 2미터를 넘었고, 뛰어난 운동 신경 덕분에 농구로 전향했다.

 

그의 재능은 곧 미국 대학 스카우트의 눈에 띄었고, 휴스턴 대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대학 시절 그는 ‘파이슬라마자마’(Phi Slama Jama)라는 별명을 가진 덩크 중심의 화려한 팀 스타일 속에서 중심 선수로 활약했다. 1983년 NCAA 파이널에서 패배했지만, 그는 토너먼트 전체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쳐 토너먼트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었다.

대학 3년 동안 그는 평균 13.9득점, 11.1리바운드, 5.3블록을 기록했고, 당시 이미 ‘차세대 NBA 스타 센터’로 평가받았다.

 

 

소속팀 – 휴스턴 로키츠의 프랜차이즈 스타

 

1984년 NBA 드래프트에서 올라주원은 전체 1순위로 휴스턴 로키츠에 지명되었다.

당시 2순위가 샘 보위, 3순위가 마이클 조던이었을 만큼 그해 드래프트는 전설적인 이름들이 많았다.

신인 시즌부터 그는 평균 20.6득점, 11.9리바운드, 2.7블록을 기록하며 리그 최상위 센터로 주목받았다.

1986년, 로키츠는 보스턴 셀틱스와 파이널에서 맞붙었으나 패배하며 첫 우승 기회를 놓쳤다.

 

그러나 올라주원의 전성기는 1990년대 중반에 찾아왔다.

1994년과 1995년, 그는 휴스턴을 2연속 NBA 챔피언으로 이끌었고, 두 시즌 모두 파이널 MVP를 차지했다.

특히 1994년에는 정규시즌 MVP, 파이널 MVP, 올해의 수비수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전무후무한 업적을 달성했다.

그의 ‘드림 셰이크’는 당시 리그 최고의 수비수들조차 무력화시켰다.

커리어 말년에는 토론토 랩터스에서 1시즌을 뛰고 2002년 은퇴했다.

 

 

기록과 업적 – 드림 셰이크의 완성형

 

하킴 올라주원은 커리어 동안 평균 21.8득점, 11.1리바운드, 3.1블록을 기록했다.

그는 블록슛 부문 통산 1위(3,830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12회 올스타, 6회 올-NBA 퍼스트 팀, 2회 디펜시브 플레이어 오브 더 이어를 수상했다.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전통적인 센터의 힘과 높이에, 가드 같은 발놀림과 민첩함을 더한 독창적인 형태였다.

특히 ‘드림 셰이크’는 그의 시그니처 기술로, 수비수를 속이며 골밑 득점을 만들어내는 장면은 지금도 농구 교본에 실릴 정도로

완벽했다.

1996년 NBA가 선정한 50대 위대한 선수에 이름을 올렸고, 2008년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하킴 올라주원은 단순히 신체 조건이 좋은 센터가 아니라, 기술적 완성도와 지능적인 플레이를 겸비한 선수였다.

그는 공격에서는 스텝과 페인트존 마무리 능력으로, 수비에서는 블록과 리바운드로 팀의 기둥 역할을 했다.

나이지리아 출신으로서 미국 농구의 정점에 오른 그의 이야기는, 노력과 적응, 그리고 창의적인 플레이가 어떻게 한 선수의

커리어를 전설로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하킴 올라주원은 지금도 많은 젊은 빅맨들이 교본으로 삼는 ‘완벽한 센터’의 상징이다.